서울야곡
- 유호 작사, 현동주 작곡 -
봄비를 맞으면서 충무로 걸어갈 때
쇼윈도 그라스엔 눈물이 흘렀다
이슬처럼 꺼진 꿈 속에는
잊지 못할 그대 눈동자
샛별같이 십자성같이 가슴에 어린다
보신각 골목길을 돌아서 나올 때엔
찢어버린 편지에는 한숨이 흘렀다
마로니에 잎이 나부끼는 이 거리에 버린 담배는
내 맘 같이 그대 맘 같이 꺼지지 않더라
네온도 꺼져가는 명동의 밤거리엔
어느 님이 버리셨나 흩어진 꽃다발
레인코트 깃을 올리며 오늘 밤도 울어야 하나
배가본드 맘이 아픈 서울 엘레지
사랑이여, 서울야곡에 젖어보라
‘서울야곡(夜曲)’은 내 감성의 피와 살이다.
내 감성의 봄날, 흥얼거리면 젖어오는 아프고
슬픈 꿈이다. 웃을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나는
이 노래를 현인선생보다, 김준규나 전영보다
훨씬 더 악상(樂想)에 가깝게 부른다고 믿고 있다.
자동차 핸들을 꺾는 듯한 경쾌한 쏠림이 있는
탱고 선율에 귀를 열고 있으면 잊었던
옛날의 빗방울이 튄다. 차창 가득 뭉개진 풍경 속에
서울이 통째 옛날이다. 이 노래가 흐르는 한
내 사랑은 진행형이다. 노래는 리플레이되면서
청춘과 그 뒤안길을 뒤섞는다.
한 여자가 그립지 않다면, 봄날이 아니다.
바늘이 튀는 엘피판이 돌아가고 있는,
술취한 늦은 밤의 기억이 복각되지 않는다면
서울야곡이 아니다.
서울이 아름다운 건, 어떤 눈물이 만들어낸
번짐 현상 때문이다. 쇼윈도 그라스.
그 옛날식 영어를 함부로 교정하지 않기를 바란다.
키치와 이국정조야 말로 이 슬픔이 서걱거릴 수 밖에
없는 이유이기도 하다. 충무로에서 본 건 쇼윈도
그라스에 흐르는 빗물, 보신각에서 찢은 편지,
마로니에 숲이 있는 대학로 쯤에서 버린 담배,
다시 명동으로 갈 때는 심야가 되었다.
불이 꺼져가는 어둑한 거리에 버려진 꽃다발.
아름다운 사랑의 후일담은 그대로 나의 이야기로
감정이입된다. 당신은 그런 서울을 봤는가.
사랑을 잃은 후 저토록 허이허이 길과 길들을
헤매어 봤는가. 서울의 지명들 하나하나가
생을 내려놓을 듯 가슴 저미는 절망의 간이역이던
기억을 가지고 있는가. 서울비가(悲歌) 한 자락
흐르지 않는 명동과 보신각과 충무로와 대학로라면,
당신은 서울사람이 아니다.
- http://blog.joins.com/isomkiss
중앙일보 이상국 기자 -
<추억과 기억이 서려있는 장소의 프라타너스와 향나무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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